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세 글자, SMR. 요즘 원전 이슈의 중심에 다시 섰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하다.
체코 두코바니 수주로 들썩였던 시장은, 정작 계약 뒷면에서 튀어나온 조건들을 보고는 한숨을 섞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WEC) 간 합의문, 그리고 그 안에 담긴 SMR 관련 조항이다.
이게 정말 한국 원전의 발목을 잡는 독소 조항일까, 아니면 불가피하지만 관리 가능한 비용일까.
그리고 이 파장이 두산에너빌리티에는 어떻게 번질까.
오늘은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본다.

도화선은 올 초 체결된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 합의다.
체코 두코바니 본계약을 앞두고, 한수원·한전과 WEC가 오랜 IP 다툼을 종결하는 대신 몇 가지 조건을 얹었다.
해외 수출 시 원전 1기당 상당 규모의 물품·용역을 WEC에서 구매하고, 로열티도 장기간 지급한다는 내용이 공개되며 “이건 이익이 남느냐”는 의문이 터졌다.
심지어 한국이 독자 개발해 수출하려는 SMR도 “WEC 기술 비의존성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는 대목이 알려지며 논란은 더 커졌다.

한수원은 “감내하더라도 사업성은 남는다”는 입장이다.
체코 수주를 따내고 글로벌 사업을 이어가려면 현실적으로 선택지가 많지 않았고, 조달 의무와 로열티는 관리 가능한 범위라는 취지다.
실제로 한수원 사장은 불공정 논란 속에서도 “감내하고 이익을 남길 만하다”고 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조달·로열티로 빠지는 몫이 있어도 총사업비·현지 의무 참여·팀코리아 분담을 합하면 수익 구조가 여전히 성립한다는 계산.
둘째, SMR은 ‘기술 종속’이 아닌 ‘독자성 검증’ 단계가 있으니, 설계를 분리하고 IP 흔적을 정리하면 길이 남는다는 논리다.

SMR 조항은 특히 민감하다.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이 키우려는 차세대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합의문 취지는 “대형 원전에서 파생된 기술을 축소해 만든 SMR이라면 WEC IP 영향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그 부분만 검증하자”에 가깝다.
그래서 업계 일각은 “모든 유형의 SMR이 해당되는 건 아닐 수 있고, 독자 설계로 가면 지식재산 침해 소지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해석을 내놨다.
다시 말해, 백지에서 그리는 SMR 라인업을 강화할수록 WEC 검증은 ‘관문’이지 ‘금지’는 아니다.
다만 50년에 달하는 로열티·검증 프레임이 길게 드리운 건 사실이라, 전략적 설계 분리와 국제 표준화 대응이 함께 가야 한다.

그렇다면 시장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단기 충격은 있었다.
논란이 확산된 8월 중순, 원전주 전반이 흔들렸고 두산에너빌리티도 이틀간 10% 넘게 밀렸다가 낙폭을 일부 만회했다.
투심은 “수익성 잠식 우려 vs. 체코 수주로 열릴 추가 파이프라인” 사이에서 줄타기 중이다. 이게 바로 지금의 가격 변동성으로 나타난다.

두산에너빌리티를 더 자세히 보자.
두산은 전통적으로 원전 주기기(원자로·증기발생기 등)부터 터빈아일랜드 EPC까지 밸류체인을 갖춘 하드웨어 강자다.
체코 사업은 주계약자인 한수원의 글로벌 확장과 보폭을 맞추는 구조라, 프로젝트가 정상 추진되면 수주·매출 가시성이 열리는 게 기본 시나리오다.
실제로 해외 원전 패키지에서 두산의 역할은 탄탄하게 쌓여왔고, 팀코리아 체제에서 기계·시공 패키지의 핵심 축을 맡아왔다.
최근 체코 이슈로 변수가 생겼다 해도, 체코 프로젝트 자체가 취소된 게 아니라면 두산의 역할 축은 유지된다.
문제는 마진율. WEC 조달·로열티로 전체 파이가 줄면, 하도급 단에서도 가격 협상 압박이 커질 수 있다. 이 구간이 두산의 주가 변동성을 키우는 포인트다.

한편, SMR은 두산에게 “리스크이자 기회”다.
리스크는 앞서 말한 검증 리스크다. i-SMR 등 한국형 SMR을 해외에 들고 나갈 때 WEC 비의존성 트랙을 통과해야 한다면, 일정·비용의 예측 가능성이 다소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기회는 이렇다. 한국은 대형 원전은 미·유럽 등에서 협력 트랙으로, SMR은 독자 트랙으로 가르는 ‘투 트랙’ 전략을 공표해왔다. 유럽·노르딕권에서 i-SMR로 발 빠르게 테스트베드를 확보하려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고,
합의문 구조가 ‘수출 금지’가 아니라 ‘검증 관문’이라면, 두산은 독자 SMR 주기기·모듈 제작 역량을 전면에 세워 중장기 포지셔닝을 강화할 수 있다.
결국 설계 독립성, 공급망 국산화, 인증 선점이 종합 점수표를 좌우한다.

정리하면, 당장 눈앞의 결론은 극단이 아니다.
한수원-WEC 합의는 불편한 조건을 담고 있지만, 체코를 포함한 대형 원전 수주전에서 반드시 필요한 길목을 트기 위한 비용이었다.
SMR은 문이 닫힌 게 아니라, 까다로운 문턱이 생겼다.
두산에너빌리티에는 단기 변동성과 마진 압박이라는 구름이 끼었지만, 체코 패키지가 절차대로 실행되고 SMR 설계 독립성을 공고히 한다면, 중장기론 업사이드가 유지된다.
투자 관점에서는 “체코 진행상황의 체크포인트”와 “SMR 인증·검증 로드맵의 가시화”가 트리거다.
전자는 수주잔고의 실적으로의 전환 속도, 후자는 독자성 검증 통과 이력과 해외 파트너십 확장으로 가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정의 프레임을 잠시 내려놓자.
‘굴욕’이냐 ‘현실적 선택’이냐로 다투는 사이, 글로벌 원전 시장은 속도가 붙고 있다.
조달·로열티는 결국 비용 문제다. 비용은 엔지니어링으로 상쇄할 수 있고, 설계 독립성은 R&D로 쌓을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숙제는 명확하다. 체코에서 성과를 숫자로 보여주고, SMR에서 남의 그림자를 벗어난 자기 설계의 실물을 꺼내는 일. 시장은 바로 그 두 장면을 기다리고 있다.